누블레도의 상징은 영롱한 밤하늘을 담은 자안. 그들이 짙은 자색의 하늘을 담은 눈을 가리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청명한 푸름을 담은 눈을 가린 그는 무엇을 보게될까.
하나, 떨어지기 시작한 별빛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도록 쏟아지는 유성우와 같이 흘러넘치면-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되도록 화사한 빛 아래 우두커니 선다. 온통 공백뿐인 세상에서 아스라이 그 너머를 바라보려 두 눈을 감으면, 영혼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백이 아득하도록 일렁거려서. 끝내,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조차도 두려워,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체념한 채로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마는 것이라.
제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고하는 이에 주체하지 못할 웃음이 터져나와 한 손으로 입가를 한번 쓸어내리다가, 그저 나른하게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별은 이미 모두 져버렸는데- 무슨 수로 암흑 뿐인 하늘 아래서 길을 찾겠다는 거지? 그 명백한 교만이 한없이 우스우면서,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저를 당당히 마주하겠다 말하는 네게 질문을 던진다.
... ...날 사랑해? 어째서?
7년이야. 아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그보다도 더한 시간이 지났는데... 넌 왜, 아직도 학창시절의 기억이나 추억하고 있는거야?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따위가,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지금의 내가 네가 기억하는 과거의 어리석은 나와는 다른 걸 알고 있을텐데- ...네가, 무슨 의도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지 모르겠어.
...내가 원하는 사랑은 영원 뿐이야. 내 곁에 온전히 남아 아무리 지우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새기고, 끝내 무너트리더라도. 상관없겠지. 양피지에 새겨진 영혼의 잔재가 불타올라 재가되어 사그라지더라도... ...내 곁에 남아있겠다면 날 이끌어보던가.
네가 그리 하고 싶다면, 내게 지팡이를 마음껏 휘둘러. 말했잖아. 네가 다가오는 건 말리지 않겠다고. 난 결코 막아서지 않을테니. 네 멋대로 해. 그 지팡이로 내 머릿속을 강제로 털어서 헤집던가,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오롯이 네 말만 듣게 만들어 보던가. 그것도 싫다면- 차라리. 영원한 안식이라도 취하게 해.
어리석게도, 내가 지금 제정신이든, 제정신이 아니든... 네게 무슨 일을 벌일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지만...- 그래, 인정해둘게... 네가 말한대로 난 겁쟁이야. 적어도 그 사실들을 자각하면서도 널 마주할 용기따위는 추호도 없으니, 먼저 찾아가지는 않을거야. 물론, 영원히 그러지는 못하겠지. 내가 살아있고, 네가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고 쫓기는 입장에 서는 것은 마음에 들지 얺으니, 네가 선택해...그래, 흔히 말하는대로 옛정을 봐서. 하루 정도는 들어줄 수 있겠지.
그리고... 오늘은 마침 날이 좋잖아? 이왕이면 빠르게 가는 게 낫겠지.
잔잔하게 그어지는 미소가 낯설어서,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갈피를 잃은 채로 그저 나아가는 대로 걸어가는 자신에게 언제나 네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지나치게 다정해서. 툭툭, 가볍게 두드리는 손짓에 더이상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제 손에 들린 정갈한 지팡이를 꾹 쥐었다.
하... ... 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야, 지금? 내가... 아무리, 널 멍청하다고 여겼어도...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줄은 몰랐는데.
우습게도 떨리는 목소리를 숨겨낼 생각조차 없이 한탄을 늘어놓았다. 이어 저를 이해하겠다는 말에 꾹 다물어진 입술은 더이상 날카로운 음성조차 흘리지 못한다. 용케 이성을 붙들어메고, 네가 뱉어내는 말에 잠자코 귀기울이다 나지막히 일갈한다.
무서워? ...그래. 차라리, 너한테 이렇게 휘둘릴 바에야... ...굳이 힘을 들여서 밀어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드네. 똑같이 어리석은 이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한참이고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침묵하다, 결국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미련없이 너를 마주한 이는 그저, 오롯이 평온하도록. 웃음도, 분노도 담지 않은 채로. 너를 하늘 가득 담으며... 문득, 시야가 굴곡져가는 것을 느끼고 불쾌하도록 일렁이는 감각이 어지러워 결국 다시 눈을 감았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반항하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 로빈. 그리고...
... ...반지는 빼. 잊을 거면 확실하게 없애야지.
아마도 영원토록 화사할 청수국이 담긴 꽃병, 퐁당- 짧게 퍼지는 물결. 이윽고 심연으로 가라앉는, 제게 남아있던 유일한 빛. 종극에 다다라 결국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되더라도. 흐린 하늘을 담은 유리병을 산산이 조각나도록 깨부수면. 그 안에는 찬란하도록 화사했던 별빛이 담겨 있을테니.
...
그래서, 어디까지 잊고 싶어?
아니지... 어디서부터 잊어야할까?
* 항상...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앞 내용은... 이전의 것과 이어집니다. 편하신대로 끊어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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