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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양커] 위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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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불길한 소리 하지말고... 지금은 옆에 있으니까, 됐어. 이 순간이 그저, 꿈에 불과하더라도... 모두 행복하니까. 그걸로 된거야. (제 품에 파고든 이를 어색하게 끌어안았다가, 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른하게 웃어. 이어 달아오른 귓가에 자연히 손길이 닿아 부드럽게 네 뺨과 함께 감싸며 조용히 물어.) 왜, 잠이 안 와. 방금까지 졸리다고 했으면서- 겨우 이런 걸로, 깨버리면... (나직하게 이어지던 목소리가 뚝, 멈추고 천천히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어 꾹 다물곤. 입술에는 무서워서, 못하겠잖아... 그대로 선을 넘을 말은 꾹 삼킨 채로, 저를 마주해오는 따스한 푸른 빛에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응,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심심하지 않게 해줘, 빈아.
Nublado & Blue Hydrangea_02 누블레도의 상징은 영롱한 밤하늘을 담은 자안. 그들이 짙은 자색의 하늘을 담은 눈을 가리고 미래를 내다본다면, 청명한 푸름을 담은 눈을 가린 그는 무엇을 보게될까. 하나, 떨어지기 시작한 별빛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도록 쏟아지는 유성우와 같이 흘러넘치면-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되도록 화사한 빛 아래 우두커니 선다. 온통 공백뿐인 세상에서 아스라이 그 너머를 바라보려 두 눈을 감으면, 영혼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백이 아득하도록 일렁거려서. 끝내,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조차도 두려워,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체념한 채로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마는 것이라. 제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고하는 이에 주체하지 못할 웃음이 터져나와 한 손으로 입가를 한번 쓸어내리다가, 그저 나른하게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Blue Hydrangea_01 ...(네 올라가는 입꼬리에 천천히 한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리고는, 아무말 없이 잠잠코 있다가...입가에 그린듯이 고운 곡선을 긋고서야 겨우 입을 열어)... ...안 그래도, 노력 중이니까 조용히해. (버릇적인 제 미소가 자연스레 깨어진 원인을 당연하도록, 절실히 깨닫고 있었으니, 원치 않았음에도 미묘하게 날이 선 목소리로 답하고는)...우스운 소리도 그만하고. (...그렇게 웃고 있으면서, 네가 할 말이야?) 추억이란... ...그저, 지나버린 시간에 불과한 걸. 굳이, 내 머릿속에 쌓인 지식들을 사그라트려서까지 쓸모없는 기억들을 지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그저 '알고' 있을 뿐이야. (기억 소멸 마법이 생각보다 섬세하더라고. 다행이지? 결국 사용할 일이 없었으니까) 다 잊었다라...
사소한 것 하나하나, 질문을 남기면. 내게 답해주는 일기장이 있었어. 분명 하루하루마다, 짧은 글을 써내린 공책일 뿐인데. 어느날 보니, 더 이상 잉크를 써내려갈 공간이 없어서, 지팡이를 두드리며... 매일 한 장, 한 장 늘려가다가....결국, 마지막 한 장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못한 채 공백으로 남아버렸지만.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어느새 빛바래도록 낡은 티가 나서. 더이상 헤지지 않도록 마법을 걸어두었는데, 이제는 쓸 일이 없으니... 내 책상 서랍 한 켠에 그저 장식처럼 가지런히 남아 있을뿐이지. 정적 속에서 흐르는 눈물이 무겁게 떨어져서 심장을 두드린다. 한참 동안이나 울고 있는 네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았다. 널 떠나가게 하는 게 아니라, 제 스스로 널 내버려두고 가면 될텐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서. 우두커니 선 채로 멍청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
있지. 오늘 쌍둥이 자리에서 유성우가 내린다던데, 같이 보러갈까? -라고... 언젠가, 네게 물었던 적이 있었지. 첫 눈이 검은 호수에 잔잔히 스며들도록 내리고, 그날 밤의 하늘은 구름이 끼어 흐려져 갔지만. 차오르는 구름 너머로 선명하게 떨어지는 빛의 향현은 놀라울만큼이나 아름다워서. 밤하늘 아래의 만남을 기약하고, 너와 함께 했던 나날들은 당연히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어. 평화롭고, 일상적인... 일부러 입꼬리를 억지로 당기지 않아도, 자연히 별 하늘 아래의 너를 시야에 담을 적에- 자연히 미소가 그어지던 그때의 기억이. 추억을 되새겨 보라 한다면, 언제든 잊지 못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닿아오는 감각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해서, 제게 뻗어오는 네 손길을 보았음에도 뿌리치지 못했다. 물끄러미 과거의 잔재처럼 남은 그 연결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조심스럽게 끌어당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