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위터 커뮤니티 [타들어가는 양피지의 잿더미 속에]의 하늘의 4학년 로그 글입니다.
*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중, 마법생물인 보가트를 마주하는 내용입니다. 현생이 방해되어서... 짧고 가볍게 썼으니, 편하게 읽으셔도 될 것 같아요.
* 하늘과 행복한 호그와트 생활해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기억이란 소중한 것이다. 머릿속 한 구석에 잠들어 결국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 빛바랜 추억이 되어 버리더라도. 당신은 언제나 그대로 온전히 나의 두 눈에, 그리고 가슴 속에 담겨있을 것이다. 나는 진실로 그러하기를 바란다.
하나둘씩 호명되는 학생들은 보가트를 다루는 주문인, 리디큘러스로 그것을 물리치는데, 실패하거나, 성공하거나. 외면하거나, 도망치거나. 자신감있게 이겨내거나, 두렵더라도 맞써 싸웠다. 놀라운 일이지. 나는 내 또래인 당신들이-물론 저보다 비죽비죽 커다랗긴하지만- 보가트의 앞에 마주 선 것만으로도 뜻깊은 갈채를 보내주고 싶다. 당신의 떨리는 손을 보았고, 무너지는 순간을 보았고, 당신이 무언가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안을 파고들어 마음껏 헤집을 권리도, 자격도 없으니 그저 가벼운 손길로 스쳐지나가는 호의를 베풀 뿐. 하늘이 정의하는 친구란 그런 것이었다. 토닥이는 손짓이 네게 따스한 위로가 되든, 잊혀질 무언가가 되든. 어느 쪽이 되더라도 상관치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것에 의미를 두어선 아니되니.
그래 언제나처럼 느지막하게 불려오는 제 이름이 이제는 익숙하다. 저를 부르는 이름은 오롯이 단 한 사람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입에 담아, 제 이름은 하늘을 잔잔히 울리고 일렁거리며 그 속에 파묻힌다. 하늘은 천천히 학생들 사이로 나아가, 굳게 닫힌 벽장 앞에 섰다. 지팡이를 꼭 잡은 왼손은 떨리지도 힘이 들어간 것도 아닌, 그저 자연히 당신을 마주할 적과 같이. 편안하게 늘어져있다. 두려움이란 허상이자, 심연이다. 나를 들여다 보게하는 그 작은 호기심과 자연히 밀려오는 공포, 아득한 진실...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 아무것도. 그러니 지금까지와 같이 포기하지 않고 해내야지. 그렇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한발자국, 두발자국... 세발자국에서부터 우뚝 멈춰섰다. 눈 앞에 선 것은 저보다 한참 높은 시야의, 색소옅은 밀빛의 머리칼에 따스한 푸른빛 눈동자를 가진 그리운 이의 모습이다. 하긴, 마법 생물이 광활한 하늘을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 하지만 제 눈 앞에 선 이의 모습은 조금 의아함이 들었다. 어째서? 여기는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닌데. 그의 손에는 언젠가 보았던 기억이 있는 곱게 접힌 양피지와 그 옆을 맴도는 부엉이 한 마리. 자연스레 손이 뻗어져 당신의 왼손에 들린 편지를 빼앗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 눈동자가 무엇을 읽어내리는 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물어진 마른 입술이 천천히 열리면서 그 문장을 제게 내뱉는다.
" ...리디큘러스! "
지팡이를 힘주어 휘두르며 외친다. 순간, 푸드덕거리는 날개짓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제 앞에 서있던 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래, 자신이 원하였던대로 그저 아무것도. 참담하게도 그 사실이 더욱 더 아득하게 슬퍼서. 자연히 입가를 가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이곳엔, 당신이 없는데 애써 웃을 필요가 있을까? 입가에 버릇적으로 그어지던 잔잔한 미소가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하늘은 지도를 해주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자연스레 학생들의 인파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다음 학생의 호명소리. 그래 아무 문제 없이 끝났으니 괜찮아.
그런데 있죠, 편지를 든 당신이 언제의 당신인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조금씩, 빛바래며 사라지는 그때일까. 아니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 아주 어릴 적, 당신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그 날이었을까.
그 위에 빗방울이 툭툭, 쏟아져 그 잔재마저 휩쓸려 사라지면. 이제 내 곁에는 누가 남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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